[동방TS]어느 공기 마녀 이야기 (4) 알몸 와이셔츠는 로망. 망상과 창작 구역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에휴.”
 
전생에 무슨 업보를 저질렀기에 이 모양 이 꼴일까요? 저는 탈의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2년 전, 유카리 씨가 머리카락이 길면 길수록 가지고 놀기 좋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진짜 몇 번이고 자르고 싶었지만 목숨이 더 소중했기에 허리까지 기른 검고 긴 생머리에 바깥세계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눈처럼 새하얀 피부. 어디 신사에 사는 빈곤 미소녀무녀랑 자매지간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외모가 닮아서 단아하고, 아름다운 미소녀.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저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정말 익숙해져 버린 ‘저의 TS’ 쿠로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거울을 보며 ‘쿠로코’와 마주하고 있는 거. 예전에는 정말 기분 나쁘고, 무서웠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괜찮으면 안 되는데, 진짜 괜찮아요.
 
아아, 쓸데없이 진지해졌네요. 어찌됐든 거울 속에 있는 쿠로코는 진짜 미인입니다. 남자는 미인이나 미소녀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니 제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두근거림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에요. OK? 저는 절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에요!!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두근거림은- 제가 거울을 보게 만든 원흉이자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인 알몸 와이셔츠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장착하고 있는 남자의 로망 때문에 부끄러워서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겁니다!! 절대 다른 이유 없어요!
 
-여러분, 이미지해주세요.
 
지금 당신의 눈앞에 레이무가 2~3살 더 먹고 성장해서 새하얀 와이셔츠 한 장에 드로어즈만 입고 있습니다. 약속된 전개로 흉부 장갑이 꽉 끼어 위쪽 단추를 못 잠그고 있고, 흰색이라 비칩니다. 거시기라던가 거시기. 거시기도요.
 
더 중요한 것은 제 가슴 속옷을 코아 씨가 빨래한다고 가져갔고,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와이셔츠 한 장과 팬티뿐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거기다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억지로 옷자락을 잡아당겨 드로어즈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은-!!!
 
여기서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아래쪽은 드로어즈가 아니라 검정색 팬티 스타킹이었다면- 어, 어라? 다들 뭔가요?! 그 위험한 변태 신사를 보는 듯한 눈은!! 당신들도 똑같은 인간들이면서 왜 저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에요?! 백흑은 진리! 저는 평범한 영국 신사입니다!!
 
“쿠로코?”
“힉!”
 
등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저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파츄리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파, 파츄리 선생님?”
“괜찮아? 아까부터 계속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던데-”
“그, 그랬어요?”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그랬다고요? 물론 파츄리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몸와이셔츠 차림의 제가 거울을 보며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우와, 엄청 기분 나쁩니다. 끔찍해요. 이건 그냥 정신병자잖아요. 하지만, 파츄리 선생님이 봤다고 했으면 본거죠. 이제부터 주의를- 아니, 잠깐만요?
 
“저기, 파츄리 선생님?”
“왜?”
“혹시 제가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들으셨나요?”
 
저는 방금 전에 거울을 보며 생각했던 것. 알몸 와이셔츠 찬양이나 자기 자신을 보고 두근거림을 느낀 것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파츄리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파츄리 선생님은 저의 물음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해줬습니다.
 
“아니, 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렸어. 아, 맞다. 와이셔츠, 흰색, 드로어즈, 검정색, 신사, 백흑이라는 단어만은 확실히 들은 거 같은데. 이거 무슨 뜻이야? 암호?”
 
다행히 알몸 와이셔츠나 팬티 스타킹 같은 위험 키워드는 못 들으신 거 같군요. 진짜 다행이에요. 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파츄리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그럼 앞으로 거울 보며 혼자 중얼거리지 마. 진짜 기분 나빠.”
 
기분 나빴군요. 하긴 제가 반대 입장이었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기분 나빠했을 겁니다. 당장 하얀 집에 신고했을 겁니다. 반성합시다. 저는 속으로 다시는 혼잣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실천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쿠로코.”
“네?”
“물어볼 게 있는데.”
 
파츄리 선생님은 외래인 출신인 저에게 가끔 바깥 세계에 대해 물어보십니다. 어찌된 구조인지 이 도서관. 바깥 세계에 관한 책들도 가끔 들어오고 있어요. 유카리 씨의 장난인 걸까요? 어찌됐든 저한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신 파츄리 선생님은 몇 초 동안 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새 옷. 코아가 만들어줘서 한번 입어봤는데- 어때?”
“네?”
 
그러고 보니 파츄리 선생님 옷이- 평소의 파자마 차림이 아니네요?! 제 복장-알몸 와이셔츠-에 신경 쓰느라 전혀 몰랐어요. 저는 파츄리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이미지 체인지에 깜짝 놀래며 그녀의 바뀐 복장을 살펴봤습니다.
 
도포처럼 소맷자락이 넓은 연 보라색 롱 원피스에 머리에는 평소 자주 쓰시던 나이트 캡이 아니라, 초승달 모양의 머리핀. 발에는 흰색 뮬을 신고 계신 파츄리 선생님은 정말-
 
“모에~!!!!!!!!”
“그거 무슨 뜻?”
“아, 그게- 끝나준다!! 라는 뜻일까요? 어찌됐든 정말 잘 어울려요. 최고에요!”
“그, 그래?”
 
저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선생님을 칭찬했고, 파츄리 선생님은 저의 극찬에 얼굴을 붉히며 작게 미소 지으셨습니다. 모에에에에에!!! 누구 카메라 있는 사람 있어요? 사진 찍어서 가보로 삼을 겁니다!! 말리지 마세요!! 파츄리 선생님은 저의 신부입니다!!!!!!
 
후,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반성은 안 해요. 제 동방 최애캐 중 한명인 파츄리 선생님은 저의 신부입니다. 불만 있으면 덤비세요.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고, 이제 어떡하죠? 저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습니다. 5%가 아쉬운 알몸 와이셔츠입니다. 가슴 쪽이 조금 답답하네요.
 
“나가자.”
“못 나가요.”
 
이 꼴로 어떻게 나갑니까?! 여기가 저희 집에 저 혼자라면 나갔겠지만, 여기는 파츄리 선생님의 도서관입니다. 옆에는 파츄리 선생님이 있고, 밖에는 코아 씨와 시아가 있네요. 절대 못 나가요. 코아 씨나 시아에게 이 꼴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탈의실에서 눌러 사는 것도 조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저는 이제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파츄리 선생님은 조용히 제 어깨를 두들겨주시며,
 
“괜찮아. 쿠로코도 잘 어울려. 책에서 봤어. 바깥세계에서 유행하는 패션이지? 알몸 와이셔츠.”
“그 책 태워버리세요.”
 
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파츄리 선생님,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요. 우우우! 이제 몰라! 저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겠습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알몸 와이셔츠가 아니라 평범한 흰색 와이셔츠에 프릴 달릴 반바지입니다. 절대 팬티가 아니네요! 팬티가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아요! 부끄럽지 않으니 재빨리 코아 씨를 붙잡아 바지나 치마를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저는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탈의실 문을 열었습니다.
 
“쿠로~!!!”
“우웁!!”
 
아랫배에 뭔가 굉장한 충격과 함께 뱃속에 든 모든 것들을 게워낼 뻔 했으나, 저는 꾹 참고 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쿠로?”
 
이것을 참지 못하면 저는 신성한 도서관에 빈대떡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파츄리 선생님에게 벌을 받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게 다가오는 귀여운 동생에게 추한 꼴을 보여주게 되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카로운 손톱을 자랑하며 저를 노려보고 있는 이 집주인이자 시스콘 흡혈귀에게 120% 확률로 살해당합니다.
 
정말 오래오래 잘 살고 싶었기에 입안 가득 들어있는 ‘그것’을 억지로 삼켰습니다. 우우. 입안이 엄청 찝찝합니다.
 
“플랑! 떨어져! 그 더러운 여자에게서 당장 떨어져!”
 
더럽다니 실례네요. 그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본 ‘홍마관의 주인’ 레밀리아 씨는 기겁을 하며 코알라처럼 제 허리에 착 달라붙어있는 ‘악마의 여동생’ 플랑을 제게서 떨어트렸습니다.
 
“괜찮아?”
“오빠, 괜찮아? 괜찮은 거지?”
“쿠로, 괜찮아?”
 
제 뒤를 따라 탈의실에서 나온 파츄리 선생님은 제 등을 쓰다듬으며 회복 마법을 걸어줬고, 플랑과 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의 몸 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봤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직 배가 조금 아프지만 참을만했기에 저는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파츄리 선생님도 이제 괜찮으니까 회복 마법 그만 거셔도 돼요.”
 
그런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밀리아 씨는 한심하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한심하네. 레이무라면 그 정도는 가볍게 피했을 건데.”
 
또 시작이시네요. 레밀리아씨는 대부분의 2차 창작물처럼 레이무를 굉장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이무랑 자매 수준으로 닮았으면서 약하고, 소심한 저를 무척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충 아시겠죠?
 
뭐, 그것까지는 좋아요. 좋은데, 왜 자꾸 레이무랑 저를 비교하는 건가요? 당해본 사람은 알 겁니다. 매번 이웃집 아들이나 엄마 친구 아들을 대상으로 비교하는 어머니의 잔인함을- 그런 괴물들과 저를 비교하지 마세요! 저는 평범한 인간! 레이무는 전투 종족인 무녀! 종족부터가 틀려요!
 
아, 진짜. 이래서 레밀리아 씨와 마주치기 싫었는데! 정말 싫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레밀리아 씨가 기상할 시간이 되면 무조건 집에 갔는데, 연회 때도 레밀리아 씨 있는 곳만 절대 안 갔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오늘은 비도 오고, 마리사가 아주 성대하게 난리를 쳐줘서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어. 그런데 너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레밀리아 씨는 갑자기 제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레밀리아 씨는 조용히 제 하반신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너, 하의 어쨌냐?“
“그거, 알몸 와이셔츠라고. 바깥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패션 중 하나야. 레미.”
“절대 아닙니다.”
 
바깥세계를 변태들의 소굴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파츄리 선생님. 저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선생님의 말을 부정했으나, 파츄리 선생님은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언제나 마법 공부 혹은 독서용으로 쓰고 있는 테이블로 가셨습니다. 레밀리아 씨는 선생님의 말에 호기심이 생기셨는지 그녀를 따라가네요.
 
“사쿠야, 또 고생하겠네.”
 
이것은 약속된 전개라고 해야 할까요? 평소 홍마관의 패턴입니다. 파츄리 선생님은 레밀리아 씨에게 이상한 지식을 주입하고, 레밀리아 씨는 재미있겠다면서 실행. 고생하는 것은 주인 잘못 만난 메이드 장. 사쿠야.
 
“힘내라. 사쿠야.”
 
사쿠야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저 둘을 말릴 힘도 능력도 없네요. 진짜 미안해. 사쿠야. 네가 덜 고생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줄게. 그러니까 힘내.
 
저는 알몸 앞치마 차림의 미소녀가 표지에 그려진 잡지를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는 흡혈귀와 마녀라는 초현실적인 광경에서 시선을 돌려 코아 씨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빨리 하의를 받아야 하는데-
 
“아.”
 
찾았습니다. 코아 씨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책장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코아 씨!”
 
그녀가 일하고 있는 책장으로 다가가 코아 씨의 이름을 부르자, 코아 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아, 쿠로코 씨, 파츄리 님과의 목욕 즐거우셨어요?”
 
어라? 기분 탓일까요? 코아 씨, 표정은 방긋방긋 웃고 있었지만, 무엇인가에 화가 난 듯한 기분이- 기, 기분 탓이겠죠? 그렇죠?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코아 씨의 물음에 답했습니다.
 
“네, 즐거웠어요.”
“즐거우셨다니 다행이네요. 파츄리 님과의 혼욕.”
 
기, 기분 탓이 아니었습니다!!! 코아 씨,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아요! 이거 화난 거 맞죠? 그런 거죠?! 무슨 실수를 해버린 거죠?! 도대체 어떤 대형사고를 저질렀기에 온후하신 코아 씨가 저에게 분노하시는 거죠?!
 
“저, 저기 코아 씨?”
“정말 실망이에요. 저, 쿠로코 씨를 무척 상냥하고, 자상하며 상식 있는 신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파츄리 님의 몸이 보고 싶으셨어요?”
“그, 그건-”
“당연히 보고 싶어서 같이 목욕을 하신 거겠죠? 저질.”
 
뭐, 뭔가 변명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제 이미지가!! 이미지가!!!
 
“같이 목욕한 이유는 파츄리 선생님이 머리를 감겨달라고 부탁해서-”
“사역마인 저를 부르면 되잖아요?”
“저, 저! 파츄리 선생님의 머리만 감겨드렸습니다! 다른 짓은 안 했어요. 이상한 생각도 절대 안 했습니다.”
 
코아 씨는 저의 변명에 손을 뻗어, 살짝 제 가슴에 대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눈을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거짓말. 아까부터 계속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파츄리 선생님의 알몸을 보고 야한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저는 코아 씨의 말에 재빨리 무릎 꿇고 사과했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저도 변태라는 이름의 신사입니다.
 
“변태, 치한. 귀축. 자기 편할 때만 여자라고 자칭하는 비겁한 사람. 저도 같이 목욕하고 싶었는데, 단 둘이서만- 치사해요. 악마. 최악. 귀축.”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시키는 데로 다 할게요.”
“정말이에요? 정말 시키는 데로 다 해주실 거에요?”
 
당연합니다. 저도 동방 최애캐 중 한 명인 소악마 씨에게 변태취급 당하며 미움 받기 싫습니다. 거기다 코아 씨는 상식이 있는 분이니까 다른 녀석들 같이 이상한 거나 터무니없는 것을 시키지는 않겠죠? 저는 코아 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네, 정말이에요.”
“그럼 이번에는 용서해드릴게요. 하지만, 또 그러시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다행이네요. 어떻게든 코아 씨에게 용서를 받았습니다. 저는 다음 번에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 까먹을 뻔 했네요.
 
“저기, 코아 씨. 가져다 주신 옷에 하의가 없었어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이왕이면 이거보다 좀더 큰 상의도 갖다 주시겠어요? 가슴 쪽이 꽉 끼여서-”
 
어라? 저, 또 뭔가 실수한 걸까요? 코아 씨는 저의 부탁에 갑자기 얼굴을 붉히시더니 제 흉부를 뚫어져라 노려보십니다?! 몇 초 동안 제 가슴을 노려보신 코아 씨는 무척 분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시며 작은 목소리로 제게 ‘바보’라고 중얼거리시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버리셨습니다. 저 또 잘못한 걸까요? 그런 걸까요?
 
“모르겠다.”
 
왜 그러시는지 전혀 모르겠으니 넘어가기로 합시다. 저는 코아 씨가 올 때까지 가볍게 공부나 할 생각으로 근처 책장에서 연금술에 관한 책을 한 권 꺼내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목 말라.”
“사쿠야 씨 불러드릴까요?”
 
이제 막 책을 펼쳐 공부하려고 했는데. 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어느새 제 옆에 앉아있는 레밀리아 씨에게 시선을 옮겼습니다. 레밀리아 씨는 사랑스러운 외모에 안 어울리게 요염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사쿠야는 지금 바쁘니까 됐어. 그보다 목이 말라. 미쳐버릴 정도로-”
 
귀찮습니다. 미소녀가 끈적하게 달라붙어주는 것은 환영하지만, 레밀리아 씨는 예외에요. 그녀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징그러워요. 눈치 없는 저라도 알겠습니다. 목 마르니까 피 좀 달라는 거죠? 당연히 제 대답은-!
 
“허나 거절한다. 이 쿠로코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피를 달라고 부탁하는 흡혈귀에게 No라고 거절해주는 일이다!”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대사였습니다. 여기서 죠죠 포즈까지 취하면 완벽할 건데- 아쉽게도 레밀리아 씨가 떨어지지 않아서 대사만 멋들어지게 했습니다.
 
“칫”
 
레밀리아 씨는 제가 거절의 뜻을 보이자 짧게 혀를 차며 떨어졌습니다. 어라? 너무 순순히 떨어지는데요? 평소라면 건방지다면서 탄막 세례를 먹이고 강제로 흡혈하실 분인데?
 
저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레밀리아 씨 몰래 뒷걸음질 쳤습니다. 레밀리아 씨는 무척 불길해 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아, 목 말라. 시아에게 피 좀 달라고 해야겠다.”
“잠깐 기다려!!!”
 
이 악마 녀석! 내 귀여운 여동생의 피를 마시려고 해?! 네 녀석의 피는 무슨 색이냐?! 황급히 제 동생에게 가려는 레밀리아 씨의 팔을 붙잡아 앞을 막았습니다.
 
“절대 안됩니다!”
“왜? 나는 흡혈귀이고, 목이 말라. 그런데 너는 피를 주기 싫다고 했어. 목이 매우 마른 나는 어쩔 수 없어 병약한 시아에게 피를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 아이라면 절대 거절 안 할 거니까.”
 
그렇습니다. 착하고 상냥한 제 동생이라면 흔쾌히 레밀리아 씨에게 피를 나눠주겠지요. 몸도 무진장 약하면서 말이죠. 저는 레밀리아 씨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제 피를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이 놈의 로리 흡혈귀가-!? 때리고 싶어요! 저 능글맞게 웃고 있는 카리스마 브레이커의 얼굴에 수정 펀치를 날리고 싶어요! 당연히 역으로 반격당하고, 살해당하겠지만- 제길! 분합니다!
 
“제발 제 피을 빨아주세요. 빠르고, 강하며, 아름다우시고 카, 카리스마까지 넘치시는 레, 레밀리아 님.”
“뭐,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마셔줄게.”
 
아아, 환상향에는 S가 가득해요. 저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오른팔 소매를 걷어 올려 레밀리아 씨에게 바쳤습니다. 마시다가 사례나 걸려라! 레밀리아 씨는 무척 흡족해 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제 오른팔을 깨물었습니다.
 
“쿠로, 치사해. 언니만 마시게 해주고-”
 
플랑, 너는 또 언제 왔니? 자신의 불운함에 절망하며 부러운 눈으로 흡혈 중인 레밀리아 씨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플랑에게 조용히 왼팔을 내밀었습니다.
 
“알았어. 줄게. 그 대신, 옷에는 흘리지 마. 이거 내 옷 아니니까.”
“응, 알았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까지 빨렸습니다. 다행히 옷은 더럽히지 않았네요.
 
 
“맛있었어!”
“운동 좀 해. 피가 끈적해서 마시기 힘들잖아.”
“으, 응.”
 
잠깐 코마치에게 인사하고 왔습니다. 마귀 같은 흡혈귀 자매는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우아, 아직도 어질어질합니다. 하지만, 원래 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해야 하는데,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너무 졸려요. 이제 한계에요. 저는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

“오빠?”

쿠로코 오빠가 아까부터 책상에 엎드린 체 움직임이 없습니다. 아까 흡혈로 뭔가 잘못된 걸까요? 저는 걱정되는 마음에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제 앞에 앉아있던 파츄리 언니가 제 팔을 잡으시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쿠로코, 피곤해서 잠들었나 봐. 가만히 둬.”
“네.”

저는 파츄리 언니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시 오빠에게 시선을 옮겼습니다. 코아 씨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오빠의 등에 모포를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요.

“시아.”
“네?”

멍하니 오빠를 계속 쳐다보고 있자, 파츄리 언니가 저를 불렸습니다.

“쿠로코가 매일 머리 감겨줘?”
“네, 서로 감겨주고 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 혼자서는 머리를 감지 못해요. 그래서 매번 오빠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파츄리 언니는 저의 대답에 작게 미소 지었습니다.

“사이 좋네. 부러워.”
“저희는 남매니까요.”

고작 같이 산지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는 쿠로코 씨를 오빠.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쿠로코 씨가 제게 손을 내밀어주셨을 때부터 계속- 그러니까 저는 영원히 오빠의 편입니다. 오빠를 위해서라면 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어요. 아, 너무 진지해져 버렸네요. 참고로 말씀 드리는 거지만, 저는 가족으로서 오빠를 좋아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파츄리 님, 홍차 끓여왔습니다.”
“고마워.”
“시아 양도.”
“감사합니다.”

저는 코아 씨가 내민 홍차를 받아 한 모금 마셨습니다. 으으. 여전히 홍차 맛은 모르겠습니다. 떪은 맛 밖에 안 느껴져요. 저는 혀를 살짝 내밀며 홍차에 밀크랑 꿀을 듬뿍 넣었습니다. 아,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저는 달콤해진 홍차를 홀짝이며 코아 씨와 파츄리 언니의 대화를 구경했습니다.

“파츄리 님, 쿠로코 씨랑 단둘이 목욕하셨죠? 치사해요. 저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미안해.”
“뭐, 괜찮아요. 손해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나저나 아쉽네요. 이번에는 메이드 복을 입히고 싶었는데-”
“에취!”

코아 씨가 무척 아쉬운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보자, 오빠는 부르르 떨면서 기침을 했습니다.


그 후, 오빠가 일어날 때까지 다과를 즐기며 파츄리 언니랑 코아 씨랑 수다를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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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영원정 루트가 발동되었습니다.]
[이벤트: 알몸 와이셔츠가 발동되었습니다.]
[시스템: 쿠로코에 대한 호감도가 10 올라갔습니다.]
[시스템: 소악마의 호감도가 5 올랐습니다. 파츄리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이벤트: 소악마와의 XXX가 발동되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중간 고사도 있고, 기숙사에는 컴퓨터도 없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어찌됐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화로 홍마관 파트는 끝입니다. 하지만, 코아랑 파츄리는 가끔 나올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다음 파트는 영원정으로 가는 것은 확정되었고, 혹시 다른 루트를 원하시는 분은 덧글로 남겨주세요. 현재 플랫을 짜둔 루트는-

1. 태양의 꽃밭.
2. 쿠로에 등장.
3. 마녀들의 다과회.
4. 백옥루.

이 정도 일까요? 어찌됐든 다음 편은 최대한 빨리 쓰려고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지금 야고코로 연구실을 보며 모에력을 올리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그럼 덧글 많이 남겨주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추신)알몸 와이셔츠는 백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가터가 진리입니다. 이것만큼은 양보 못해요..


덧글

  • Lekka 2012/11/08 13:10 #

    열심히 썼구먼, 건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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